합격수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지만, 막상 쓰려고 보니 제 욕심 때문에 정말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지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던 제 수험과정을 정리해서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 좌충우돌이었던 제 과목별 공부와 수험 생활에서의 시행착오들을 보여드림으로써, 수험생 여러분들이 다시는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수험과정과 과목별 전략을 다르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전자는 시간의 흐름에 맞게 시행착오를 그대로 드러냈고, 후자는 그 중 제가 수험생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 위주로 작성하기로 하여, 1부와 2부로 나누었습니다. 공부하다가 지쳐서, 너무 힘들고 답답해서, 아니면 국립외교원 시험에 뜻이 있어서 이 글을 보시는 모든 수험생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그 시작
“저, 외무고시 볼래요.”
“네가? 너 뭔데? 정외과야?”
“아뇨.”
“그럼, 뭐, 영어나 제2외국어 전공했어?”
“공대에요.”
“그렇다면, 유학이나 적어도 어학연수 정도는 다녀왔겠지?”
“간 적 없어요.”
“그래? 그럼 대체 뭘 믿고!!!!”
25살. 군 제대 후 학교에 복학했다. 대학생 연합 봉사활동의 첫 날, 짝을 지어서 서로의 소개를 해주는 시간이었는데, 나에 대한 소개는 ‘25살, 공대, 군제대 했음.’ 끝이었다. 내 짝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추가했다. “제 꿈은 PD에요” 갑자기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꿈은 뭐야?’ 라는 생각과 함께. 내 인생이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져있는 느낌이었다. 공대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길이 정해진 삶, 이미 길은 정해져있고 나는 그냥 그렇게 인생을 ‘흘려’왔다는 죄책감과 불안감이 덮쳐왔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조금씩 그 정해진 길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무언가에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변리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직업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던 중 수업 시간에 대체에너지 개발에 관한 내용을 들었는데, 언젠가 신문에서 봤던 기후변화협약에 관한 기사와 오버랩되었다. 공대에서는 주로 ‘개발과 연구’를 한다. 외교 분야에서는 그러한 개발과 연구를 ‘활용하여 협력’한다. 공학 분야에서 개발된 신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국가간의 절대적인 파이를 크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개발과 활용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인재역시 필요하기에 공대지식을 가지고 있는 내가 외교관이 되어서, 이러한 개발과 활용을 연결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전해 보기로 했다. 결심한 이후에는 무작정 그 어두운 컨베이어 벨트에서 뛰어내렸다. 뭘 믿고? 믿는 건 없었다. 그렇지만 하고 싶었다.
2. 0(zero)에서 시작하기
맨 땅에 헤딩하기가 시작됐다. 8월 초에 휴학을 하고, 시작했는데,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에 학원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쉽게 잡히지 않았다. 우선 인천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영어와 일어의 기초를 닦기로 했다. 영어와 일어가 급하다고 생각해서 두 과목에 집중했던 시기였다. 영어는 정영한 선생님의 문법강의를 듣고, 공부한 후, 다시 들으면서 필기가 잘못되거나 추가할 부분을 적었다. 또한 영작문 독해 강의 3개월을 인강으로 들으면서, 연어(collocation)에 기반하여 영어자료를 정리해두었다. 일어의 경우, 히라가나부터 외웠다. 일주일 걸려서 겨우 외운 후, 얇은 문법책을 사서, 세 번 정도 빠르게 보았다. 그 후 민혜정 선생님의 기본강의를 들으면서 문법과 단어를 정리해나갔다. 경제학의 경우 김진욱 선생님의 예비강의를 들으면서, 이준구 교수님의 <미시경제학>, 김경수-박대근 교수님의 <거시경제학>에 강의자료를 옮겨 적었고, 책을 정독했다. 국제정치학의 경우, 정원준 선생님의 인강을 들으면서, 책들을 읽어나갔고, 외교사를 연대표로 정리해두었다. 이 연대표가 국립외교원 수험장 들어가기까지 전까지 내 손에 들려있던 연대표였다. 국제법의 경우 백승호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김대순 교수님의 <국제법론>을 읽었는데,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학원자료와 책을 한 번 읽는 것도 벅찼다. 이렇게 빠르게 2차 과목들을 마치고 나니, 새해가 밝았다. 1차 준비를 해야 했는데, 8월에 1차 준비를 시작했을 때, 기출문제를 풀었다. 이때 합격선에서 약 10점정도 낮게 나왔다. ‘10점 정도야 금방 따라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으나, 이는 엄청난 착각이었고, 이 착각이 바로 내 수험기간을 결정적으로 늘려버렸다. 1월에는 행시, 입시 기출문제를 풀었지만, 반복해서 풀기만 했고, 영어와 일어자료를 반복해서 외우느라 제대로 된 분석은 하지 못했다. PSAT을 우습게 본 것도 한 몫 했다. 그 결과, 처음 풀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10점차이로 떨어졌다.
처음 시작했던 시기라 정신이 없었다. 매일매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으며, 조금씩 뇌가 재구성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재미있고, 행복했다. 시작한 후 6개월 만에 본 PSAT시험이라 크게 기대는 안했기에, 떨어졌지만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한국사 자격증을 따고, 국제정치를 위해서 관련 교과서들을 읽고 정리해뒀다. 김용구 교수님의 <세계외교사>책을 읽으며 연대표를 보강했고, 신림동으로 일주일에 두 번, 일어와 영어수업을 다녔다. 혼자서 공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림동 녹두거리 너머에 방을 잡았다.
3. 신림동 입성기 : 일단 버티자
첫 자취생활이었다. 거기다가 하루 종일 공부에만 매달리는 신림에서의 생활! 일단 버티자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처음 3주간은 밥 먹을 때와 전화할 때 빼고는 입을 열어본 기억이 없다. 안되겠다 싶어서 스터디를 시작했고, 스터디원들과 대화하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1순환 시기가 되었고, 경제학을 들어보기로 했다. 예비강의도 들었고, 그래도 나름 공대생인데, 1순환은 쉽게 따라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수업을 듣는 내내, 말 그대로 ‘멘붕’상태였다. 수업 내용도 벅차고 복습만 하기에도 힘에 겨웠다. 정리는 꿈도 못 꿨다. 또한 영어, 일어학원, 한자스터디를 병행하느라 하루에 4-5시간씩 밖에 못 잤다. 하루에 2시간밖에 못 자면서 버틴 날들도 있었다. 어떻게든 버텼다. 이후에는 2순환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이준구 교수님의 <미시경제학>책과 학원교재를 다시보고, 이우헌 교수님의 <거시경제학>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고자 했다.
국제정치학은 경제학보다 훨씬 재밌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기도 했는데, 정원준 선생님의 인강을 들으면서 스터디를 통해서 답안연습을 했다. 이후에 2순환 시기에는 작년 3순환 인강을 들으면서 학원 모의고사와 기출문제를 통해서 답안연습을 했고, 약 2000점 정도의 답안 작성을 했으며, 이 답안지를 내 서브노트로 활용했다.
국제법 역시 답안 연습을 시작했다. 순환별로 거의 매일 50점씩 답안연습을 했으며, 정성주 선생님의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조문암기도 시작했는데, 무미건조하게는 외우기가 어려워서 마치 수형도를 그리듯이 각 조문들의 연결관계를 구조화해서 외웠다. 또한 조문의 내용을 글자그대로 기억하기 보다는 주요 내용을 기억한다는 생각으로 정리하면서, 관련된 판례들을 함께 정리했고, 요약집에 학원자료들을 정리하였다.
신림동에 늦게 들어온 것을 후회했다. 다른 수험생들은 내가 인천에서 혼자 공부하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강도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게다가 나는 PSAT도 부족하고, 영어와 일어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논문과목들의 양은 왜 그리도 방대한지! 이를 따라가느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5시간 내외 밖에 못 잔 것 같다. 그래도 버텼다. 신림동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다시 PSAT이었다. 8월부터 기본 강의와 심화강의 등을 인강으로 들으면서 혼자 조금씩 정리해갔다. 1월에 본격적으로 PSAT 스터디를 시작했는데도 실력이 제자리걸음이었다. 기출문제를 풀고 또 풀고, 모강도 풀었는데도 제자리걸음. 답답했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중 PSAT 시험 3주를 앞두고 ‘답이 나오는 구조’를 분석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답이 나오는 구조를 찾아보기로 했다. 언어논리에서 적용이 가능했는데, PSAT의 지문은 출제자들이 의도적으로 조작을 해놓은 지문들이기 때문에 강조점들이 숨어 있었고, 영작과 일작을 하면서, 글을 작성해보는 연습을 하다보니, 출제자들의 강조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글자 하나하나 살펴보며, PSAT 기출문제를 분석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PSAT시험 역시 평균 7점차로 떨어지고 말았다.
4. 좌절, 그리고 다시 : 누가 이기나 해보자
좌절했다. 이번에는 회복이 빠르지 않았다. PSAT은 두려웠으며, 자신감은 사라졌고,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졌다. 그래도 한다고 했는데, 평균 7점차이라는 큰 점수 차이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끝까지 모든 힘을 다해보기로 생각했다. 게다가 비록 평균 7점 차이는 나긴 했지만, 언어논리에서는 20점 정도의 점수 상승이 있었다. 더 달려보기로 했다. 아직 코피가 터져본 적도, 쓰러본 적도 없으니,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공부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 해 3순환에 들어갔고, 국제정치학에서 내 답안이 총 6회중 3회 모범답안으로 선정되었다. 다시 자신감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작년 1순환을 인강으로 다시 들으면서 이해하고자 했고, 이후에 <미, 거시 Practice book>스터디를 통해서 문제를 풀었다. 국제경제학 역시 <Practice book>을 두 번 돌렸고, 국제경제학 1순환 시기에 서브노트를 수업에 맞추어 만들었다. 국제정치학은 수험기간 내내 내게 힘이 되어준 과목이었다. <변환의 세계정치>책을 읽었으며, 학원 모의고사를 토대로 답안 스터디를 했다. 스터디기간에는 거의 매일 답안을 작성했다.
그런데 국제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요약집에 정리하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안진우 선생님의 답안지 특강을 듣고, ‘2차 멘붕’에 빠졌다. 내가 잘하고 있었다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트랙을 거꾸로 달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법의 체계를 제대로 세워야 겠다고 생각하여, 안진우 선생님 1순환을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매일매일 수업 내용을 정리해서 서브노트로 만들었다. 수업을 듣고, 서브노트 만들고, 정영한 선생님 영어 강의 듣고, 일본어 기출 스터디하고, 매일 자료해석 기출문제를 혼자로 풀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역시 먹고 자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고시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영어 단어 외우고, 원룸 침대에 엎드려서 서브노트를 작성하다가 잠들고 하면서 한 달 넘게 버텨 국제법 서브를 완성했고, 이후 이 서브를 중심으로 국제법 공부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2순환시기에는 PSAT에 전념하기 위해서 수업을 듣지는 않았지만, 매일 50점씩 혼자서 답안연습을 해두었고, 나중에 이 답안지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었다.
12월초에 JLPT가 있었는데, 일본어 공부는 외시 시작하면서 처음했기에, 일어 자격증을 따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경제학 2순환 수업이 11월 중순까지 있었기에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약 2주간 밖에 할 수 없었다. 절박했다. 국립외교원 시험을 볼 수 있는 티켓을 얻고 싶었다. 2주동안 정말 절실했다. 그동안 공부삼아 일요일에 보았던 일드가 도움이 됐는데, 시험당일 날 듣기평가가 시작되자마자, 내 자리 쪽에 있는 스피커가 안 나왔고, 나머지 스피커에 잡음도 심했다. 잘 들리지가 않았고, 당황했다.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겨우 JLPT에 합격할 수 있었다. 한없이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2번이나 내 발목을 잡았던 PSAT이었고, 이번에는 7월부터 조금씩 준비를 했다. 혼자 자료해석을 꾸준히 풀었고, 10월에는 스터디를 조직하여, 자료해석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10월 중순부터는 언어논리와 상황판단 기출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기출문제를 외울 정도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후 세 과목 모두 모강수업을 들었으며, 12월부터는 하루 종일 PSAT에 올인했다. 기출분석하고 모강 풀고, 다시 기출분석하고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누가 이기나 해보기로 했다. 신림동에 있는 모든 문제를 말려버리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언어, 자료, 상황 합쳐서 모강만 120회 이상을 풀었고, 기출문제는 7회 이상 반복했다. 결과는? 시험 전날 2시간 밖에 못 잤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통과할 수 있었다.
5. 마지막 외무고시 2차 : 내 한계는 어디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무고시 2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국제법 3순환을 들으면서 주요 주제들에 대해서 정리 및 답안 연습을 했고, 국제정치는 답안 연습과 함께 그동안 연습했던 답안지들을 읽고, 서브노트를 보았다. 경제학 역시 정리해두었던 자료들을 보면서 답안연습을 하였는데, 이 시기에는 매일매일 답안 연습을 100~150점씩 했다. 손에 굳은 살이 생길 정도로 답안을 쓰고 또 썼다. 경제학이 약해서, 마지막에는 집중적으로 보았는데, 그렇게 잠도 못 자고 무리를 하던 내 몸이 시험을 열흘 앞두고 탈이 났다. 열이 오르고, 설사를 계속했다. 병원에 가서 링거를 두 번씩이나 맞았는데도,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버텼다.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다행히 시험 3일전쯤에는 버틸 수 있을 정도까지는 회복이 되었고, 남은 힘을 2차 시험에 다 쏟아 부었다. 그러나 경제학은 전혀 공부하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들이 출제되었고, 많은 부분을 적지 못했다. 그래도 시험 끝나고 웃음이 났다. 제로베이스에서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와서, 당당하고, 공평하게 시험을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 비록 시행착오투성이었지만, 여기까지 온 내 자신이 대견했다.
잠시 쉰 후에, 이번에 국립외교원 1차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워낙 변수가 많은 PSAT시험이라, 다시 기출문제 중심으로 그리고 모강을 활용하여 공부했다. 이미 PSAT공부를 해 놓은 상태라 어렵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수면부족’이 문제였다. 시험 전날 제대로 자지 못했고, 자료해석 시간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덕분에 21번부터 30번 사이에서는 7문제나 틀렸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정신을 차렸고, 상황판단에서는 문제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다행히 여유 있게 통과할 수 있었다.
6. 희망의 발견, 마지막 도전 : 외무고시에서 국립외교원으로
외시 2차 성적이 발표됐는데, 국제정치, 국제법은 합격권에 들어가는 점수였지만, 경제학은 과락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경제학보다 국제정치, 국제법점수였다. 패배했지만, 내용이 좋아서 금방 회복되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한 가지 해결해야했는데, 내가 외무고시를 보게 된 것은 ‘고시합격’이 주는 영광 때문이 아니었나하는 것이었다. 즉, 정말 외교관이 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며칠을 고민한 결과, 나는 다시 말했다.
“국립외교원 시험 마지막으로 볼게요. 저, 외교관 될래요.”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학을 해결해야 했다. 우선 혼자서 미,거시 500제를 풀었다. 그 이후 경제학 3순환 강의를 인강으로 들었고, 이를 유창석 국립외교원 경제학 책에 정리했고, 이를 세 네 번 반복해서 보았다. 국제 경제학은 이미 만들어둔 서브노트를 바탕으로 공부를 하면서, 약 일주일간 스터디를 통해서 <김진욱 국제경제학모의고사 문제zip>을 풀었다. 마지막으로 기출문제를 모아서 혼자서 목차를 잡고, 푸는 연습을 했다.
국제법의 경우, 기존에 정리해두었던 서브노트에 부족한 부분은 정인섭 교수님의 <신국제법강의>책에서 읽고 추가해두었다. 또한 스터디에 참여하여, 매일 100점 가량의 국제법 답안작성연습을 하였고, 마지막으로 안진우 선생님의 최종정리 특강을 듣고, 국제법의 중요 주제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여, ICC부분을 자세히 보지 못했고, 시험에서 잘 쓰지 못했지만, 다행히 2,3문은 공부를 해둔 주제여서 선방할 수 있었다.
국제정치의 경우, 매주 일요일 외교사 답안 스터디를 했으며, <변환의 세계정치>와 각종 논문을 읽으면서 요약정리 해두었다. 이를 통해서 약 10회정도의 답안연습을 하였고, 기출문제를 찾아서 목차 잡고, 말로 내용을 채워 넣는 연습을 했다. 마지막으로 신희섭선생님의 최종정리 특강을 들었다. 열심히 준비한 외교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국제정치에서 준비해보았던 주제들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통합논술의 경우, 첫 회 시험이라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지만, 세 과목 중 교집합이 있는 영역을 뽑아서 준비하였고, 스터디에서도 답안연습을 진행했다. 하나의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이틀간의 시험을 보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머리가 몽롱했고, 통합논술Ⅰ의 1문의 논점을 놓쳐버렸다. 시험이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서 내내 아쉬움이 맴돌았다.
2차를 마치고, 한 달가량 쉰 후 학교에 복학했다. 국립외교원 시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고, 학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학교를 다니면서 일주일에 두 번씩 신림으로 면접스터디를 다녔고, 이 경험이 면접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2차 합격 발표 후에는 합격자들끼리 조직한 스터디에 성실하게 참여했는데, 학교중간고사 기간과 면접스터디가 겹쳤고, 영어토론을 대비하기 위해서 이대 영어토론클럽까지 따로 다녔다. 게다가 인천에서 서울까지 이동하는데 왕복 3시간 30분 이상씩 소요되어 정말 시간이 부족했다. 또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해보고 안되면 장렬히 전사(?)하기로 했다. 짜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철 안에서 앉아서, 서서 면접 스터디 자료를 읽고 정리했고, 영어자료 정리본을 외웠다. 스터디 장소까지 걸어가면 인성면접 예상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떠올렸으며, 음악대신 영어 연설 MP3를 들으면서 영어토론 모두 발언 준비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면접이 끝난 후 후회는 없었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겼다.
3차 합격자 발표가 났다. 좋기도 했지만, 이제 쉴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많이 부족하지만, 정말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일같이 공부를 했고, 그 결과 겨우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과목별 전략
(1) 1차 과목: PSAT- 자신을 믿어보세요.
첫 번째, 기출문제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 행시 7년치 기출문제를 뽑아서 ‘답이 나오는 구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왜 답이 되는지, 왜 답이 아닌지를 지문에 있는 조사 하나까지도 신경 써 가면서 꼼꼼하게 분석해나가기 시작했다. 언어논리와 상황판단의 경우, 선지분석을 한 이후에 다시 지문을 읽되, 출제자의 입장이 되어, 문제화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이렇게 되니 PSAT 정답과 오답들이 머릿속에서 유형화되어갔다. 자료해석은 보다 기계적으로 접근하였는데, 10문제를 시간을 재서 풀고, 이후에는 시간을 재지 않고, 선지를 모두 분석하면서 풀었다. 그 이후에 해설과 내가 생각한 풀이방법을 하나씩 비교해보는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그리고 외웠다. 나만의 풀이방법을 기출을 통해서 얻고, 그 풀이방법을 외워서, 적용했다.
두 번째, 재량보다 준칙이었다. 문제풀이 순서를 정했다. ㄱ,ㄴ,ㄷ등의 선지가 있는 경우, 무조건 ㄱ부터, 1,2,3선지는 1번부터 보기로 정했다. 만일 이를 정하지 않고, 느낌에 따라서 접근을 하게 되면, 실제 시험장에서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시간이 부족해질 경우 당황하게 되어 그 과목 전체를 망치게 될 가능성도 있다. ㄱ부터, 1번부터라는 준칙을 정했다. 다만, 이 경우 40번까지 모든 문제를 풀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괜찮았다. 푼 문제를 다 맞히자는 준칙도 함께 세웠으니까. 그리고 푼 문제를 다 맞히는 경우, 합격할 수 있다는 확신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나만의 시계를 봤다. 스터디에서 의무적으로 모강을 풀고, 독서실에 그냥 쌓아두던 시기가 있었다. 당연히 점수는 오르지 않았고, 그 이후로 PSAT스터디는 주로 자율스터디로 돌렸다. 나만의 풀이 방법을 가지고, 내가 풀어야할 문제를 정하고, 나만의 시계를 보면서 접근했다. 스터디에 끌려가기보다는, 내 계획을 스스로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열심히 하는 분위기에 취하기보다는 정말 열심히 했다. 1회를 풀더라도 1문제를 풀더라도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양을 채우기 보다는 내 머리를 채워가면서, 내 시간을 가지고 풀었다.
PSAT은 사고과정을 측정하는 시험이기 때문에, PSAT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내 사고과정자체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전략을 ‘흉내’내기보다는 내 전략을 세우고, 이 전략을 체화하면서, 자신의 사고과정을 바꾸겠다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2차 과목
1)국제정치 : 많이 읽으시되, 지금 왜 읽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많이 읽었다. 사회학적 상상력, 군주론, 20년의 위기, 소프트파워, 문명의 충돌, 국제정세의 이해, 신한국책략, 국제 분쟁의 이해, 변환의 세계정치, 국제정치 패러다임, 각종 논문 등등. 다만 그냥 읽었던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답안지를 떠올려 놓고, 책 속의 내용을 답안지에 현출해보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을 정리해두고, 실제로 답안지에 적으려고 노력했다. 강사들의 답안지를 베끼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읽은 글에서 내 생각을 뽑아내려고 노력했다. 외교원 시험을 앞두고는 과거 약 20년치 기출문제와 행정고시 국제정치학 과목에서 출제되었던 10년치 기출문제를 모아놓고, 목차를 잡는 연습을 했다. 목차를 잡고, 그 안의 내용은 말로 채워서 연습하고, 그 틀을 그대로 암기하는 연습을 했다.
외교사는 연대표를 만들었다. 연대표에는 큰 사건 위주로 정리를 하였고, 해당 사건 전후의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위주로 정리하였다. 또한 20년의 위기, 국제분쟁의 이해, 변환의 세계정치 등에서 외교사에 국제정치이론을 적용해놓은 부분이 있다면 이를 연대표에 적어놓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외교사와 국제정치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고리고 연결될 수 있었다.
2)국제법 : 암기보다 이해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국제법은 암기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말하자면 ‘영혼없는 조문암기.’ 그러나 아니었다. 국제법에서 암기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해를 하고나면, 암기량도 줄어들고, 공부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안진우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서, 국제법의 기본적인 법리를 이해할 수 있었고, 선생님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서브노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서브노트를 기준으로 중점적으로 외운 것은 조문뿐만 아니라, ‘목차’였다. 먼저 이해를 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정리하고, 이러한 정리된 국제법의 논리와 법리를 ‘목차’ 암기를 통해서 익힌 것이다. 그리고 이 목차를 꾸준한 답안연습을 통해서 현출하고자 노력했고, 답안 작성 후 스터디원들간의 첨삭과 논의를 통해서 국제법에 보다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시험 직전에는 그동안 정리했던 서브노트를 보고 목차와 내용을 떠올리는 연습을 했다. 국제법에서는 암기로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국제법상의 논리를 이해하려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경제학 : 기본 개념과 가정을 알고 있는지부터 확인해보았습니다.
내가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부족했던 것은 이해가 아니라 암기였다. 경제학의 풀이과정을 외운 것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 그리고 가정을 외운 것이었는데, 이것들을 모른 채 풀이과정을 보다 보니 난해할 수밖에 없었다. “무차별 곡선이 무엇인가? 외부효과는 무엇이지? 헥셔-오린 모형의 기본가정은?” 이런 내용을 숙지하고 있지 못했었고, 그 결과 내용이해가 어려웠던 거이었다. 그러나 정의와 가정을 이해한 후 암기하고 나니, 풀이과정 혹은 논리 전개 과정 중에 어려웠던 부분들이 해결되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정의와 가정을 다시 떠올려서 이해를 도모하고자 했다. 그 이후에는 외시, 행시 기출문제를 최대한 모아서 스스로 풀어보고, 목차를 잡아보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설명해본다는 느낌으로 공부를 했고, 미시의 경우 추가적으로 500제 문제집을 풀어서, 계산 문제에 대비하였다. 경제학이 어렵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 해당 내용의 맨 처음에 어떤 가정이 있는지를 생각하고, 이를 기억해두면 좋을 것 같다.
4)통합논술 : 제가 직접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통합논술은 기본적으로 경제학, 국제정치, 국제법의 공부가 일정수준이상 되어 있어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우선 세 과목 공부를 하고, 시험 전 약 2주전부터 통합논술도 함께 준비했는데, 많이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스터디를 통해서 주요 주제들에 대해서 직접답안을 작성해보는 연습을 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답안 작성 시에 단순 지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세 과목을 연계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민하던 중 내가 직접 이 문제를 실무에서 다루고 있고, 입안하는 위치에 있다고 상상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보다 능동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서론과 결론을 도입하여 문자 그대로 ‘통합’적인 답안을 쓸 수 있었다. 즉, 경제, 국제정치, 국제법적인 공부를 성실히 한 상태에서, 이를 직접 실무에서 활용한다는 생각으로 연결되는 답안을 쓰도록 연습했다.
(3) 3차 : 면접 -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보세요.
우선 집단면접(국문토론)과 인성면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집단면접에서는 지원자의 첫인상이 결정되며, 인성면접에서는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게 되므로, 이 두 가지를 가장 신경 써서 준비했다. 특히 발언 ‘내용’과 ‘마음가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였는데, 우선 면접의 내용측면에서 집단면접의 경우 현재 이 주제가 왜 문제가 되고 있는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리고 이견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이런 경우 합의를 도출하기가 보다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인성면접의 경우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내 경험을 솔직히 말하되. 이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느꼈고, 그 느낀 점이 자신이 외교관으로서 근무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면서 준비했다. 즉,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이를 통해 미래에 어떤 외교관이 될 수 있을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연습을 했다.
면접 시 마음가짐의 측면에서는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면접준비를 하는 동안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고, 부러웠으며, 따라잡고 싶어서, 스스로를 지나치게 채찍질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동안 급성장하기는 어려웠고, 자신감만 하락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보겠다. 내 능력 범위 내에서는 최대치를 내보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용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겼지만, 거만하지 않는 태도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았다. 아직은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이 점을 솔직하게 보여드렸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렸다.
2. 수험생활
(1) 괜찮아요.
너무 앞만 보고 달리기도 했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 가면서, 쉬지도 못하고, 밥을 먹으면서 국제법 조문, 영어 단어를 외우기도 했었는데,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괜찮아요’라는 말이었다. 잠깐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평소에 먹고 싶었던 것 먹고, 도림천에 나가서 물 흘러가는 소리도 들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잠깐 멈추니 내가 얼마나 왔는지, 내가 어떤 방향으로 왔는지가 보이고, 이를 통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중간에 쉬면서, 가끔 멈춰서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고생하면서 온 자신을 위로하면서.
(2) 쉴 때 뭐하세요?
인터넷 카페에 가끔 올라오는 질문, 그리고 내가 직접 받았던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 질문이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쉴 때 쉬는 거지. 뭘 하다니? 왜 이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 하냐면 수험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데, 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쉴 때 일종의 강박처럼 무언가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쉴 때 영화를 본다는 계획을 세워버리면, 반드시 영화를 봐야한다는 생각이 다시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다보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기에 나는 쉴 때 무엇을 할지 정해놓지 않았다. 마음 가는 대로 했다. 영화, 예능, 일드, 미드보기, 도림천 걷기, 카페 가서 책 읽기, 침대에 누워서 음악듣기, 좋아하는 음식 먹고 누워있기, 코인노래방가기, 요리해먹기, 공연동영상보기 등등. 쉴 때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스트레스 해소도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했다.
(3) 받아들이세요.
처음에 신림동에 와서 수험생들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대화할 때 문어체를 쓰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이를 보면서 나는 평소에 구어체를 쓰고, 답안 쓸 때만 문어체를 써야지라는 다짐을 했었다. 그러나 이상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평상시에도 답안에 쓸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어야 실전에서도 ‘현출’된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PSAT을 위한 논리력, 국제정치학적, 국제법적인 생각들을 내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버스노선들을 보고 합리적인 경로를 생각해보기도 했고, 숫자들을 보면 계산연습을 해 봤고, 신문기사를 보면서도 국제법적 논리를 따져보기도 했다. 수험에 필요한 사고를 내 삶의 일부로 만들었다.
(4) 이 순간을 즐기세요.
그 힘들었던 수험과정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외교관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며 참았기 때문이 아니다. 외교관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리다 보면 공부에 집중도 안 되고, 스스로 실제 모습과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냥 지금 이 순간, 하루하루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행복했다. 몸은 힘들고, 잠은 매일같이 제대로 못 자서 눈은 퀭한 상태로 돌아다녔지만,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지금 원 없이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뿌듯함으로 채우다보니, 결국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꿈을 위해 달려가는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여기가 즐거웠을 뿐이었다.
늦게 시작했다고 생각했고,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했으며,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모든 걸 쏟아보고 싶었다. 나중에 ‘그 때 내가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조건아래에 있었더라면...’ 이라는 무기력한 핑계 따위는 대기 싫었다. 어차피 주어진 환경이나 내가 살아온 길은 바꿀 수 없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 때 마다 스스로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포도가 먹고 싶은데 포도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포도가 시어서 못 먹을 것이라고 합리화 하지 말자. 포도가 먹고 싶으면 네가 직접 사다리를 찾아라! 사다리가 없어?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어? 못 찾겠으면 네가 만들어서라도 올라가!”
이렇게 부딪혀가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내 수험생활은 계획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었고, 그 좌충우돌의 수험생활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시험에 합격했지만 아직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가게 될 국립외교원과정도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해서 해보고 싶다. 그러한 노력의 끝에서 나는 또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발견이 내 삶을 변화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달려왔던 내 열정을 이제는 외교관으로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쓰고 싶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글 ㅣ 신소재공학부 이기호
편집 l 인하누리 김혜현 (haehyun10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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