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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仁/인하人 이야기

이호근 선배님과의 인터뷰




 안녕하세요! 인하인 여러분 :-) 인하인 출신 아나운서 선배님이 계시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학우분들이라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MBC 아나운서 공개채용 프로그램 <신입사원>에 나오셨고 KBS <우리동네 예체능>에도 출연하고 있답니다. 재치 있으신 선배님 덕분에 많이 웃었던 인터뷰였는데요. 훈훈한 비주얼의 선배님과 함께 했던 그 인터뷰 현장을 지금부터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

 바쁘신 와중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신 이호근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KBSN 아나운서 이호근입니다. 언론정보 04학번으로 2011년 졸업했고요. 만 4년 반, 횟수로는 6년째 아나운서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방송반을 했습니다. 방송반 체계가 잘 되어 있어서 제가 녹화하는 뉴스를 일주일에 1번 전교생이 모두 시청했어요. 그게 너무 좋아서 막연히 아나운서를 꿈꿨다가, 꿈이 지속돼서 대학 진학 후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본격적으로 했죠.






 사실 예전에는 제가 말을 더듬고 말이 빨랐습니다. 주변사람들이나 친척 분들도 제가 아나운서가 될 것이라고 별로 생각을 안 했죠. 그래서 아나운서 지원자들과 동일 선상에 서느라 힘들었어요. 발음을 위해 성악 발성을 배워보기도 하고 길거리 차량 간판 등을 1년~1년 반 동안 계속 읽었어요. 안 읽어본 글자가 없을 정도로 다 읽어봤죠. 2009년 처음 아카데미를 다녔어요. 2010년 6월 첫 시험을 봤고 2010년 10월에 방송 처음 시작했죠. 그 때는 간석동에서 한 달에 70만원 받는 아나운서 생활이었어요. 그러다 2011년 MBC <신입사원>이라는 오디션을 보게 됐죠.






 미생에 나오는 대사가 너무 와닿았어요. “제 노력은 양과 질이 다릅니다!” 저도 슬로우 스타터이거든요. 저는 처음에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제게 있는 과 성실함과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모두들 열심히 하기 때문에 이게 경쟁력이 될 수 없었죠. 시험에서 70~80번 떨어졌어요. 지금도 컴퓨터에 그 때 썼던 수많은 이력서가 저장되어 있어요. 수없이 좌절했지만 그나마 잘 하는 게 이거고 너무 하고 싶었어요. 내 가치만 알아봐준다면 내 매력을 점차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채용과정은 무척 다양합니다! 기본적으로 아나운서 시험은 먼저 서류면접을 봐요. 그런데 서류면접 비중은 별로 크지 않아요. 생각보다 스펙을 별로 안 보거든요. 1차는 서류 넣는 사람들이 카메라 테스트를 봅니다. 원고 3문장 읽는 건데 90% 떨어집니다. 비디오와 오디오를 보죠. 사실 비디오를 많이 보는데 잘생기고 예쁜 외모인가 보다 호감이 가는 상인가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여기서 다음 차수로 갈 수 있을지, 집에 가야하는지 결정되는 거죠. 2차는 일반상식, 논술, 작문을 보고 3차는 심층면접을 봅니다. 드디어 처음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과 대화할 수 있거든요. MC, 내레이션, 디제잉 등을 심사위원께 보여드리면 돼요. 4차는 심층 면접 한 번 보거나 합숙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4차는 최종 면접입니다. 적으면 1명 많으면 4명을 뽑습니다. 통상적으로 한 해에 3000명정도 지원하는데 1~4명 합격하는 거죠. 아카데미를 다닌 사람 중에 살아남는 사람은 10%도 안 됩니다. 그만큼 방송은 외롭고 힘든 일이죠.






 원래 스포츠를 너무 하고 싶어요! 원래 꿈이 월드컵 중계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곧장 스포츠 캐스터가 되기는 어렵죠. 그래서 일단 아나운서가 돼서 뉴스를 하면서도 스포츠 쪽을 계속 알아봤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4, 5번은 시합 일정에 맞춰서 전국에 있는 해당 경기장에 중계를 하러 갑니다. 반면 중계 없으면 8시까지 출근하죠. 그리고는 9시~6시까지 중계 준비를 합니다. 경기를 위한 자료들을 준비하는 건데요. 선수 정보 파악, 팀 순위, 시즌 결과 기록 분석, 오프닝에 무얼 물어볼지, 작년과 올해 기록 비교 등을 하는 거죠.






 예전에 뉴스와 아이러브베이스볼 하이라이트 방송 진행을 둘 다 했을 때 너무 피곤해서 대형실수를 했어요. 여러번 확인 했는데도 다른 앵커 멘트를 읽은 거예요. 또 경기 중계를 할 때 굉장히 중요한 순간에 목에 사래가 억지로 목소리 짜내서 끝낸 적이 있어요. 한 번은 A팀이 승리했는데, 마무리르 멘트를 “B팀의 승리소식과 함께”라고 잘 못 말하기도 했어요.

 첫 중계 날짜가 생각나네요! 2011년 5월 8일에서 9일 넘어가는 새벽에 신입사원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그 날 집에서 나올 때 “어버이날 선물 제대로 드릴게요!”하고 나왔거든요. 그런데 탈락해서 차마 집에 못 들어갔어요. 정확히 2년 뒤 2013 5월 8일 4시 50분 스페인 축구 중계를 했어요. 제 첫 중계 경기였죠. 그 때 어머니가 안 주무시고 보셨는데 잊을 수가 없어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죠. 친구들 만날 수 없거든요. 친구 결혼식에 간다거나 가족 생일날 확실히 같이 있어줄 수가 없거든요. 다른 아나운서랑 달리 스포츠 캐스터는 매주 중계 일정이 바뀌기 때문에 고정된 스케줄이 없기 때문이에요.






 정말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3개월 정도 전형을 치루었어요. 다양한 걸 해봤고 그 때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 조금이라도 큰 시험 보기만 하면 다 떨어지고 했거든요. 사실 영동 CBS 시험 봤는데 최종합격 전화를 받았어요. 다음날 신입사원 1차 통과 전화가 왔죠. 그래서 둘 중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때 27살 1월달이었어요. 박선홍 교수님을 비롯해 다양한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도전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CBS에 최종합격했는데 안 가고 신입사원에 도전했습니다. 그 때 목표는 3차까지만 가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보여주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8차까지 올라가서 “나도 될 수 있구나!” 자신감을 갖을 수 있었어요.






 아니요.(웃음) 그런데 <우리 동네 예체능>하는 화요일 밤이 되면 SNS 친구추가 많이 와요. 또 경기장 와서 “잘 보고 있어요.”라고 한 마디 건네주시는 분도 계신데 참 감사하죠!









 선하게 생긴 사람이요! 착한 사람 되게 좋아요. 외모도 경제력도 몸매도 착한 사람이요. 아~농담이구요.(웃음) 연애를 하다보면 항상 제가 상처를 많이 받다보니 선한 사람이 좋아요. 저는 연애를 하면 그 사람밖에 안 쳐다봐요! 그런데 팬 분한테 쪽지가 오기도 하고 여성 운동선수들과 만나는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이해해줄 수 있는 분을 만나고 싶죠.








 꼼꼼하게 피부 관리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요새 노력하고 있어요. 아침과 저녁으로 수분크림도 바르고 하루에 물 2리터는 마시는 것 같아요. 경기 중계하는 2시간 동안 500ml 물 2~3통은 마시거든요. 노폐물을 빼려고 집에서 자전거를 타는 운동을 하기도 해요.






 인하대 박선홍 교수님과 신승준 아나운서요! 박선홍 교수님은 인하대 회계학과 출신으로 예전에 동아일보 기자이셨고 아들 둘도 모두 인하대에 보내신 분이에요. 교수님은 종강할 때마다 울컥울컥하십니다. 정말 후배들을 좋아하고 아끼시는데요. 저도 저렇게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바로 회사에서 제 옆자리 선배님이신 신승준 아나운서는 제게 양보를 많이 해줬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참 많이 해주고 중계도 잘 하시며 결혼생활도 “선배처럼 하고 싶다”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고 싶은 분이에요. 일적으로나 생활적인 면뿐만 아니라 마인드도 배우고 싶어요!






 하지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정말 열심히 하세요. 뜬구름 잡는 것처럼 하기에는 경쟁률이 매우 높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일도, 떼돈을 버는 일도 아니랍니다. 내 만족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잃는 게 많기 때문이죠. 엄청 난 돈과 인기를 얻기를 기대하고 방송 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KBS 아나운서 많지만 대중이 아는 사람은 겨우 10명 정도밖에 없잖아요. 거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도 있어요. 또 바쁘다보니 자주 사람들을 만나지 못 하고 좋은 남편, 아들, 아빠가 되기 어렵답니다.






 박선홍 교수님처럼 모교인 인하대학교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리고 열심히 모든 종목 중계를 다 잘 하고 싶습니다. 제 이름 기억 못하더라고 중계 방송을 보며, “이 목소리 가진 캐스터가 중계 참 잘하는데!”라고 생각하게끔 하고 싶어요. :-)






 극과 극을 보냈죠. 1~2학년 때는 매일 술 마시고 망나니(?)처럼 살았어요. 중고등학교 사탐을 가르쳐주는 학원 강사도 하고 음식점에서 숯불 갈아주는 알바도 했어요. 시급 4천원 때였는데 한 달에 120만원 벌었죠. 그런데 후배들 술 사주느라한 보름만에 다 썼죠. 군대를 갔다 오고 1학기 다닌 후 바로 호주로 갔어요. 3~4학년 때는 조용히 혼자 수업 듣고 무조건 서울 가서 아나운서 준비를 했어요.






 사회는 되게 치열해요! 많이 놀고 시간을 즐겁게 생활하시되, 내 목표와 꿈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있어야 해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말 중에 “꿈이 있으려면 현실이 있어야 한다.” 현실이 있어야 꿈을 꿀 수 있어요. 쉽게 말하면 낮 동안 열심히 생활을 열심히 하니까 밤에 잠을 자면서 꿈을 꿀 수 있죠. 그런데 현실이 없다고 하면 그냥 꿈 속에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꿈을 꾸려면 현실에서의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해요. 이게 없으면 흔히 말하는 꿈, 망상 속에 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