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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仁/인하人 이야기

헤럴드 경제 기자, 박세환 선배님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인하인 여러분 :-) 얼마 전 SBS 인기 드라마 <피노키오>가 종영했습니다. 진실을 추적하는 기자들의 삶과 하명, 인하, 범조, 유래 수습기자 4명의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성장통을 그린 드라마였는데요. “기자는 지켜보는 게 공익이야! 그걸로 뉴스를 만드는 게 공익이고, 그 뉴스를 구청직원이 보게 만들고 대통령이 보게 만들고 온 세상이 보게 만드는 게 그게 기자의 공익이다.”라는 명대사를 남기기도 했죠. 그래서 이번 <인하人 이야기>의 주인공은 헤럴드 경제 기자이신 박세환 선배님입니다. 현직 기자가 말해주는 기자 이야기 궁금하시지 않나요?

 바쁘신 와중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신 박세환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 네이버)






  1993년도에 정외과를 들어가 2000년도에 인하대를 졸업했습니다. 졸업 전인 1999년 10월 한국산업경제연구원에서 기자활동을 시작해, 서울경제 이코노믹리뷰와 세계일보, 한경닷컴, 디지틀조선일보를 거쳐 헤럴드경제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헤럴드(Herald)는 헤럴드경제(전 내외경제신문), 코리아헤럴드, 주니어헤럴드, 캠퍼스헤럴드 등을 발행하고 있는 미디어그룹입니다. 코리아헤럴드는 1953년 창간되었으며 1973년 12월 내외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을 창간했습니다.

  2002년 홍정욱 회장이 인수해 2003년 상호를 (주)헤럴드미디어로 변경했으며, 이후 2012년 CI를 전면개편하면서 상호를 다시 (주)헤럴드로 바꾸었습니다.

  헤럴드는 2013년 창립 60주년을 맞아 ‘Life beyond Media’ 브랜드로 다시 태어날 것을 천명했습니다. ‘다시 꿈꾸고, 창조하라’는 ‘Re-imagine!’의 비전으로, 독자를 넘어 소비자 생활의 중심이 되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합니다. 헤럴드는 지난 60년간 코리아헤럴드, 헤럴드경제 등의 특화된 언론과 영어마을, 신문교육(NIE) 등의 특화된 외국어교육을 통해 독창적인 언론지식기업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현재 금융투자부의 증권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증권 관련 뉴스를 생산하는 거죠. 시장의 시황은 물론 상장사들의 재무제표와 증권사의 리포트를 분석해 시장 전망 기사를 주로 작성합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뉴스 생산을 늘리면서 지면기사 뿐만 아니라 실시간 뉴스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4시30분 기상, 6시20분까지 출근합니다. 오전 10시까지 지면마감 후 오전 장세 특징주나 증권사 리포트 분석 기사를 씁니다.

 오후에는 취재원과 만나 시장의 흐름이나 이슈에 관한 내용을 취재하게 됩니다. 퇴근은 6시30분쯤 하지만 일에 따라 늦게까지 근무할 때도 있습니다. 퇴근 이후에도 내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에 이슈가 발생한다면 언제든 실시간 뉴스를 대응하고 있습니다.









  환경연합에서 주는 상인데요. 당시 서울 지하철 공기질 리포트 탐사 보도해 수상을 하게 됐습니다. 탐사보도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됐습니다. 세계일보에 있으면서 후배기자를 교육시키던 때였어요. 그런데 서울시에 공기질 분석 자료를 발표했는데 ‘서울 지하철 공간 공기 많이 좋아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배기자와 “정말 그렇게 느끼니?”라며 이야기를 많이 했죠. 공기질 분석 자료에는 이상한 점들이 있었거든요. 생소한 지하철역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고 구체적인 정보공개를 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탐사보도를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지하철 공기질을 측정해 줄 업체 선정이 어려웠습니다. 나중에 괜히 지하철공사와 거래할 때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염려해서 다들 꺼리더라고요. 겨우 원가 가격으로 공기질을 측정해주겠다는 기업을 찾았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자금 지원을 못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우선 제 월급으로 비용을 충당했죠. ‘지하철역 공기오염 리포트’ 기사를 연재하고 정치인, 학계, 지하철, 서울시 관계자를 모아놓고 토론회도 개최했습니다. 이는 정부에서 예산을 배정하여 스크린도어 설치를 의무화하는 데까지 이어졌죠. 공기질 탐사 취재 끝내 놓고 하려고 심장 판막 수술을 미루기도 했는데, 기사를 통해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어서 보람됐습니다.






 기자라는 꿈보다는 고등학교 때부터 칼럼리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오피니언 리더를 꿈꾸게 맞겠죠. 칼럼리스트 기자뿐만 아니라 교수나 특정분야 전문가라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처음에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었으나 4학년 때 급히 사회 진로로 방향을 틀게 돼 기자직을 수행하게 됐습니다.






 일단 글쓰기와 토론을 생활화 했습니다. 정외과의 한국정치연구회 산한 언론출판연구회 학회 활동과 인하교지 활동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순간순간 고민이었던 적은 있지만 큰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다만 젊은 기자 시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여력이 없어 아쉬웠지만. 기자생활 적응과 시간 관리로 극복하게 됐습니다.








  기자를 목표로 한다면 누구나 이룰 수 있습니다. 스펙보다는 노력과 열정이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론고시를 본 적 없고 취직할 때 토익 700점도 안 됐거든요. 그래도 메이저경제지에서 증권팀장을 하고 있잖아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인하대 언론인 특강>을 갔을 때 저는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주제로 강연했어요. 

  “저는 루저입니다.” 인상 깊었던 신입기자 지원 자기소개서의 첫 문장입니다. 그는 대학도 학점도 평범하고 토익도 800점 초반 대였어요. 스펙만 보면 눈에 보이지도 않죠. 얼마 전 신입 기자들 교육을 담당한 적 있는데, 2명은 외국에서 공부했고 나머지도 소위 메이저 대학 출신에 인턴도 여러 곳에서 했고 어학실력도 뛰어나더라고요. 이에 반해 그는 이러한 스펙은 없었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영어점수와 학점이 중요하다면 저는 패배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패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지 않습니다.”하며 글을 전개하더라고요. 글에서 가장 중요한 첫 문장이 저를 끌어들였기에 글의 맛을 아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면접까지 보고 결국 뽑았거든요.

  ‘직업’으로서 기자가 되는 건 반대합니다. 물론 기자가 되면 누릴 수 있는 권한과 혜택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입니다. 돈과 권력보다는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하죠. 옛날보다 연봉을 많이 주지 않습니다. 중견기업 수준이죠. 돈을 목적으로 하면 안 돼요. 기자는 오피니언 리더입니다. 잘못된 제도나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소위 갑의 횡포를 비판할 수 있어야합니다. 사명감이 없으면 기자 일을 계속 할 수 없습니다.






  계속 기자로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전에는 기업에서 일을 해볼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사업도 해봤습니다만, 이제는 기자의 길을 계속 걷고 싶습니다. 요새 금융과 부동산 쪽 기사를 많이 썼는데 과거처럼 사회부에서도 일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기자이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것 같아요. 사람 냄새 나는 인간 박세환이 되고 싶습니다.

  고향은 서울이지만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인천에서 나왔습니다. 그렇기에 은퇴 후 언론, 시민단체, 학계 등 어떤 분야가 되든 인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재수를 준비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마 8월과 11월에 수능 2번 봤거든요. 대학 진학 후 8월 수능에 응시해서 고득점을 받았어요. 연대를 갈 성적은 됐는데 갑자기 부활한 논술시험 준비가 안 돼서 포기하고 한양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가려고 했죠. 그런데 한양대 체육관에서 원서 접수를 하려는 찰나 그냥 나왔어요. 막내누나가 전부터 “왜 재수 공부하니?” 묻고는 했었거든요. 그 학과에 비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단지 간판 하나 바꾸려고, 내 인생 1년을 버리는 건 의미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그래서 인하대로 돌아와 더 학교를 미친 듯이 사랑했던 것 같아요. 

  3월 달에 동아리 10개에 들어갔습니다.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하며 팝뮤직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고 검도부도 했죠. 점차 정리해가다 2학기 때까지 했던 건 교지랑 인하 문학회랑 언론출판연구회입니다. 군대 갔다 와서는 영문과에 재학 중이었던 지금의 아내도 만났고 3학년 때는 정외과 학생회장을 했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였기에 별로 후회할 만한 게 없어요. 왜냐면 이전까지는 늘 후회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 진학 후 후회 없이 살고 싶어서 치열하게 했던 것 같아요.






  꿈을 가지세요. 이왕이면 꿈을 크게 가지세요. 사람들이 가끔 꿈과 목표를 혼돈하더라고요. 목표 달성 가능한 것보다 더 큰 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꿈을 향해 매진해야 합니다. 비록 갈 지(之) 자로 걸어갈지언정 어쨌든 깨어서 반 발자국이라도 움직이세요. 게을리하지 않으면 분명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애교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졸업생들을 보면 타대학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소위 학력 물타기를 하기도, 애써 인하대 출신인 걸 감추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영원히 학적은 따라다닙니다. 창피해할게 아니라 그 시절에 내 모습이었기 때문에 사랑해야, 지금의 모습도 미래의 모습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애교심을 갖고 학교나 후배들을 위해 작지만 기여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고민하는 재학생과 졸업생이 됐으면 좋겠어요.